KTL ‘댓글부대’ 석연찮은 해명, 쩔쩔매는 권력기관들 [경향신문 2015.9.5.]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오히려 의혹 키운 설명… 진상규명 조사도 흐지부지


<주간경향>(1141, 1142호)이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엉터리’ 글로벌 기술정보사업과 국정원 댓글부대 관련 의혹에 대해 기사를 내보낸 후 KTL이 지난 8월 31일 드디어 입을 열었다. 보도자료 배포 형식이 아닌 특정 매체의 온라인 기사를 통한 간접해명이었지만, KTL의 공식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국감을 앞두고 더 이상 의혹이 확대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KTL은 먼저 용역팀이 엉터리 기사로 서버를 채우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KTL은 “용역팀이 구글번역기를 돌려 만든 콘텐츠를 서버에 올린 사실이 없고, 해당 용역의 목적은 정보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개발”이라고 했다. KTL은 이어 “구글번역기를 사용해 번역한 자료는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샘플로 사업의 결과물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구글번역기를 돌려서 만든 콘텐츠가 서버에 올려져 있는 건 맞지만 용역팀이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설명대로라면 용역팀 말고 다른 제3자가 서버에 접근권을 갖고 샘플 콘텐츠를 올렸다는 것인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 같은 일을 했는지가 의문이다. 유사 조직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스스로 시사한 것이다.


KTL 해명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그 다음이다. KTL은 국정원 댓글부대 의혹에 대해 “용역사업과는 무관하며, 해당업체 측이 댓글작업을 별도로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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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부대로 의심을 받고 있는 KTL 글로벌 정보 용역팀 서버 화면 중 일부. 내부 제보자들은 서버에 올린 콘텐츠 대부분이 구글 번역기를 돌린 엉터리 기사들이라고 했다. KTL은 구글 번역기를 돌린 기사는 샘플에 불과하고 용역팀에서 올린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KTL의 설명이 맞다면 외부의 또 다른 제3자가 서버를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 KTL 글로벌 정보용역팀 서버 캡처


의혹 당사자 특수관계 매체에 입장 표명


자신들이 용역을 발주한 목적은 댓글부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나 용역팀들이 댓글부대 활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KTL 설명은 댓글부대 가능성을 차단한 게 아니라 오히려 열어둔 것이다. KTL은 왜 이렇게 어정쩡한 해명을 해야 했을까.


KTL 박정원 기획조정본부장은 “발주처 입장에서는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과업지시서에 따라 용역결과물이 나왔는지를 판단하는 것이고, 용역팀들이 실제로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말 용역팀들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KTL은 그 내막을 알기 어려웠을까. 그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나하면 해당 용역은 최초 입안단계부터 실행, 결과물 제출까지 KTL 정모 본부장이 용역팀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 본부장은 KTL 별관 사무실에서 용역팀들과 하루 종일 한솥밥을 먹으며 한 팀처럼 움직였다. 용역팀들이 당초 사업목적과 달리 댓글 알바 활동을 진행했다면 그가 몰랐을 리 없다. 실제로 정 본부장은 지난 2월 경향신문에 “용역 수행 결과물은 일 단위, 월 단위로 내가 직접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KTL이 직접 보도 해명자료를 배포하는 대신 경제전문지인 파이낸셜뉴스의 온라인 기사를 통해 해명을 내보낸 것도 의문이다. KTL로부터 용역을 수주한 그린미디어 대표 박모씨는 파이낸셜뉴스 편집국장 출신이다. 그는 허위 용역제안서 제출과 석연찮은 사업 진행으로 국감을 앞두고 댓글부대 의혹까지 제기하게 만들어 KTL을 궁지에 몰아넣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KTL 박 본부장은 “외부 감리를 통해 용역사업 진행 결과에 대한 판단을 받아본 후 그린미디어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왜 KTL은 치열한 법정공방을 앞두고 굳이 소송 상대방인 박 대표의 친정 매체를 통해 해명을 해야 했을까. ‘구글번역기를 이용한 콘텐츠는 샘플에 불과하고 용역사업 목적은 운영시스템 구축’이라는 KTL 해명 자체도 이상하다. 박 대표가 지난 2월 경향신문에 했던 해명과 대동소이한 데다 용역사업 범위를 시스템 구축으로 제한함으로써 소송 상대방인 그린미디어의 법적 책임을 완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KTL은 왜 하필이면 의혹의 당사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매체를 골라서, 그것도 박씨가 했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을까. 과연 KTL은 그린미디어의 잘못된 용역 탓에 궁지에 몰린 피해자인가, 아니면 같은 배를 탄 동지인가.


결국 외부 수사기관에 의한 전면적 수사가 아니면 KTL 댓글부대를 둘러싼 의혹은 밝히기 어려워 보인다.


욕설 듣고도 대꾸 못한 파견 경찰


하지만 KTL의 미스터리한 글로벌 정보 용역사업의 ‘실체’ 앞에서 권력기관들은 하나같이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KTL 용역팀 내부고발자 2명이 최초로 사업의 실체를 검찰에 제보한 후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서울경찰청까지 차례로 진상규명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공공기관에서 15억원짜리 사업을 수주한 업체가 구글번역기를 돌려 엉터리 기사로 서버를 채우고 있다는 고발내용은 처음엔 분명 귀에 솔깃한 제보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들 기관은 제보를 접수한 후 2~3주 지나면 하나같이 ‘구체적 단서가 없어 조사를 진척시키기 어렵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검찰은 진정서를 접수하고 4개월간 아무런 추가조사도 진행하지 않다가 지난 6월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상 내사종결 방침을 밝혔다. 제보자들이 수사 착수에 필요한 범죄자료를 건네주겠다고 했지만 주임검사는 ‘(억울하면) 다시 고발하라’며 자료접수를 거부했다. 감사원도 마찬가지였다. 제보자인 최모(34), 김모씨(35)는 “감사원에 처음 제보할 때만 해도 큰 비리를 발견한 것처럼 적극성을 보이다가 정작 나중에 정식으로 감사청구를 접수시키려 하니까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주춤하는 사이 지난 4월에는 국민권익위가 나섰다. 국민권익위에 파견나간 경찰관 3명은 3일간 직접 KTL을 찾아가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들은 용역팀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국가정보전략연구소 민모씨(46)로부터 차마 입으로 옮기기 힘든 욕설을 듣고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KTL 직원들이 민씨 뒤에 상당한 배후가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파견 경찰관 김모씨는 “민 소장이 들어와서 브리핑을 하길래 2분 만에 중단시켰더니 밖으로 나가면서 욕설을 한 것”이라며 “나중에 민 소장이 찾아와 ‘다른 사람과 휴대폰으로 통화하던 중 욕설이 나온 것’이라고 해서 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국민권익위는 이 같은 수모를 당하고도 별다른 대응도 해보지 못한 채 두 달간 시간만 끌다가 지난 6월 서울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권익위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청 역시 처리시한 3개월이 다 돼가도록 아직 이렇다 할 수사 결과를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국감을 앞두고 수사하는 모양새만 취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다.


수사기관뿐 아니라 국회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산자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월 <경향신문> 보도를 보고 2명의 제보자와 국정원 개입의혹을 폭로한 남궁민 전 KTL 원장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남궁 전 원장은 “처음에 국가를 위해 엄청 큰일을 벌일 것처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예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산자위 야당간사인 홍영표 의원실에는 이번 국감을 앞두고 KTL을 피감기관에서 빼달라는 민원이 잇따라 접수된 바 있다. 홍 의원실 측은 “본격적인 국감 증인 선정 협상을 앞두고 새누리당 쪽에서 KTL을 피감기관에서 제외해달라고 해서 처음에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50905150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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