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리본의 힘은 참으로 위대했다.
한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들을 비탄에 빠뜨린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사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뜻을 담은 검은 리본과, 끝까지 생환의 희망을 놓지 않는 기원을 담은 노란 리본의 힘이 아니고서는 기적 같은 노승열(23)의 PGA투어 첫 우승과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7)의 프로 전향 후 LPGA투어 첫 우승이 동시에 이뤄질 리가 없다.
노승열은 이미 최경주 양용은 배상문의 뒤를 이를 한국의 차세대 골프스타로 주목받고 있었고 리디아 고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선정하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힐 만큼 세계가 공인하는 골프 천재소녀다.
그렇기에 이 두 젊은이에게 우승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그리고 감격적으로 승리 퍼레이드를 시작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세월호의 비극적인 소식이 퍼지면서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유명 골프대회에 참가하는 골퍼들이 모두 모자에 검은 리본이나 노란 리본을 모자에 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의 국력과 인지도, 그리고 각종 세계 골프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국인 또는 한국계 골프선수들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의 유명한 골프투어에는 빠짐없이 한국선수들이 활약하고 있기에 같은 스포츠를 하는 사람으로서 동료의 슬픔과 희망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숭고한 스포츠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한국인은 달랐다. 고난과 위기의 역사 속에서도 꿋꿋이 민족의 뿌리를 지켜온 한민족의 후예답게 특유의 집념과 도전, 끈기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뤄냈다.
강원도 출생으로 2007년 프로로 전향, 주로 아시안투어와 유럽프로골프투어를 중심으로 활약하다 지난해 PGA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에서 우승하면서 PGA투어에 진입한 노승열은 여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2008년 아시안투어 미디어 차이나 클래식, 2010년 유럽프로골프 투어 말레이시아오픈과 웹닷컴 투어에서 우승한 경험은 있지만 PGA 투어에서는 컷을 통과하는데 급급했고 톱10이나 톱25에 들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노승열은 확 달라졌다.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350야드를 넘나들고 아이언 7번으로 200야드를 넘기는 장타력에 정교함마저 더해졌다. 중장거리 아이언 샷을 웨지 샷처럼 다루는 샷 퍼포먼스 능력은 절정에 달한 느낌이어서 조만간 PGA투어의 젊은 별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올 들어 나타난 전적이 증명해주고 있다. 13개 대회에 출전해 11개 대회 컷을 통과했고 톱10 한번, 톱25에 세 번이나 들었다.
특히 뉴올리언즈의 루이지애너TPC 코스에서 펼쳐진 이번 대회 3라운드까지의 플레이는 전성기 때의 타이거 우즈를 연상케 할 만큼 완벽했다. 오히려 타이거 우즈보다 스윙은 더 부드러우면서 정제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하루에 7언더를 몰아친 3라운드에서의 노승열의 플레이는 압권이었다. 이 코스가 생긴 이래 3라운드까지 보기 없는 플레이를 펼친 선수가 전무했는데 노승열이 3라운드 보기없는 플레이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군더더기가 철저하게 제거된 심플한 스윙과 샷 결과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고도의 평정심, 그리고 주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도 돋보였다.
28일(한국시간)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PGA투어 3승의 키건 브래들리는 노승열의 샷 능력과 흔들림 없는 게임 운영에 기가 질렸는지 제풀에 무너졌고 뒷심을 보이며 추격한 앤드류 스보보다, 로버트 스트렙도 노승열의 우승을 가로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승리로 2016년까지 PGA투어 출전권을 확보함은 물론 제5의 메이저대회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출전 티켓도 거머쥔 노승열은 우승 퍼팅에 성공한 뒤 우승소감을 묻는 질문에 “나의 우승이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비탄에 젖은 한국에 행복한 에너지를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번 대회에 임한 노승열의 가슴은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검은 리본과 생환의 희망을 담은 노란 리본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기에 그렇게 의연하게 침착하게 게임을 풀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노승열의 취리히 클래식 우승 소식에 이어진 리디아 고의 스윙잉 스커츠 LPGA클래식 승전보 역시 침울한 분위기에 빠진 한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는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레이크 머세드 골프장에서 열린 마지막 라운드에서 ‘철의 여인’(척추에 철심을 박은 데서 비롯된 별명) 스테이시 루이스(29), 재미교포 신지은(21·한국명 제니 신)과 마지막 라운드까지 숨 막히는 대접전을 벌인 끝에 합계 12언더파로 스테이시 루이스와 한 타 차, 신지은과 두 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리디아 고가 왜 타임이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100인’에 박근혜 대통령을 제치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아시아에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과 더불어 18명 중 한 명으로 뽑혔는지 알만 하다. 무적의 여왕으로 LPGA투어를 호령하다 전성기에 은퇴한 골프여제(女帝) 애니카 소렌스탐이 왜 리디아 고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앞장서 추천했는지 그 혜안이 존경스럽다.
소렌스탐은 현역 시절 ‘자신을 능가할 선수’로 딱 두 명을 지적했는데 그게 바로 미셸 위와 리디아 고다. 소렌스탐은 “미셸의 앞에는 위대한 미래가 있다. 그녀는 새로운 세대의 신호.”라고 말했다. 한편 리디아 고에 대해서는 "그는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LPGA 투어 역대 최연소 챔피언, LPGA 투어 아마추어 선수 최초 대회 2연패 등 여러 기록을 세우고 환상적인 성적을 거뒀다"며 "그는 나이는 어리지만 탁월한 재능과 성숙미를 갖춰 골프팬은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선수"라고 격찬했다.
지난 목요일(24일) 17세 생일을 맞은 리디아 고는 스윙잉 스커츠 LPGA클래식 우승으로 아마추어시절에 이룬 두 번 우승을 포함 벌써 LPGA투어 3승을 거둠으로써 소렌스탐의 혜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소름끼치게 입증했다.
기능면에서의 그의 탁월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대선수들과 피 말리는 경쟁을 치르면서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담담함은 도저히 17세 소녀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갤러리들은 그가 미국인이 아니고 한국계 뉴질랜드 교포임에도 불구하고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18홀에서 연장전에 가기 직전의 압박감 속에서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앞으로 리디아 고를 대변해주는 명장면이 될 것이다.
리디아 고의 모자에도 검은 리본과 노란 리본이 나비처럼 내려 앉아 있었다. 역시 이 리본이 리디아 고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 틀림없다.
한국인의 고통을 덜기 위해 혼신을 다한 여드름이 송송 솟은 푸른 청년과 앳띤 소녀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자. 그리고 세월호의 비극을 이기고 새로운 희망으로 미래를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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