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칼럼] 결선투표제와 비례대표제를! [한겨레 2016.12.15.]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발기인)


‘결정적 단서’가 나온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제이티비시>(JTBC)가 보도한 태블릿피시를 말한다. 청와대가 주도한 미르재단과 케이(K)스포츠재단 설립에 최순실이 개입되었다고 집중 보도한 <한겨레>와 <경향신문> 기자들의 노고를 가볍게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 결정적 단서가 드러나지(10월24일) 않았다면,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10월25일), 국정농단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요구가 봇물을 이뤄 2만-20만-100만-95만-190만-232만의 촛불 시민이 광장을 메울 수 있었을까? 과연 검찰과 여타 주류 언론들이 태도를 바꾸고, 새누리당이 분열하여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기에 이르렀을까? 결정적 단서의 발견, 나는 그 발견이 몹시 반가웠지만, 그것의 우연적 성격 때문에 섬뜩 놀라기도 했다. 워낙 설득하기는 어렵고 선동하기는 쉬운 토양이다. 만약 그 태블릿피시가 파기되었거나 감춰진 채로 있었다면? 이 물음은, <한겨레> 독자 한 분의 “왜 우리는 2년 전에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촛불을 들지 못했나요?”라는 성찰적인 물음과 함께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조금 일찍 프랑스에서 태어난 반혁명주의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말이다. 이 말을 오늘 국면에 적용하면, 박근혜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수준차가 백일하에 드러남으로써 탄핵이라는 비상조치를 불러오게 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이게 나라냐?”는 외침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타오르는 촛불들은 박근혜 정부에 비해 높은 국민의 수준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4년 전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국민의 수준이 오늘 갑자기 올라간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박근혜 정부가 국민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96%의 국민이 알기 위해 우연히 발견한 결정적 단서가 필요했다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오늘까지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이고 검찰과 지식인들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은 무슨 역할을 했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들 중 주류를 차지하는 세력은 국민 수준에 뒤떨어지는 정부를 지향하는 편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민의 수준보다 낮은 정부 아래 있을 때 기득권을 계속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부가 국민보다 낮은 수준임을 감추려고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재벌 개혁과 함께 언론 개혁, 검찰 개혁을 강조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되돌아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개혁 대상인 그들이 개혁을 이끌 만한 수준의 정부를 원치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역사 진전의 발걸음은 워낙 느리고 때론 뒤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 솔직히 말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은 다만 식물정권이라 그 앞에서 고개를 쳐들고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다시금 국민보다 낮은 수준의 정권 앞에서 납작 엎드릴 날이 곧 올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87년 6월 항쟁 이래 새 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오늘, 나의 바람은 다만 19세기 초 보수주의자가 말한 “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와 국회를 구성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정도로 소박하다. 결선투표제(대통령)와 독일식 비례대표제(국회의원)가 그것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얻은 후보가 없을 때, 1, 2위 후보가 2차 결선투표에 나서는 결선투표제를 대부분의 대통령제 국가가 시행하는 것은 한 번 투표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보다 결선투표를 통해 차선이라도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하는 게 국민의 뜻에 더 가깝고 대통령도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어야 책임의식을 더 가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유무는 나라의 정치풍향계에 엄청난 차이를 갖게 한다. 가령 내년 봄의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정당의 마린 르펜 후보는 1차 투표에서는 1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우리에게 이 제도가 없었던 것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왜곡과 반동의 굴절을 안겨주었다. 87년 6월 항쟁이, 속된 표현을 빌려 “죽 쒀서 개에게 준” 꼴로 귀결된 가장 큰 이유는 결선투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엄기호씨의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의 서문에서 “우리는 광장의 조증과 삶의 울증을 반복하고 있다”는 문장을 읽었다. 광장의 조증과 삶의 울증의 반복… 그것은 4월혁명의 광장이 5·16 군사 쿠데타로 짓밟히고, 80년 5월 광주항쟁이 전두환 무리에게 처참하게 압살되었는데, 다시 87년 6월 광장이 ‘노태우 당선’으로 귀결된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우리에게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양김’(김영삼과 김대중)이 분열하지 않아도 되었고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반동의 흐름도 막을 수 있었다. 역사적 기회를 허망하게 잃어버린 것이다. 폐족이 되어 마땅했던 반민주 수구세력이 ‘산업화’ 세력이라고 자칭하며 팽배해진 물질지상주의와 영남패권주의에 올라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이루며 오늘에 이른 게 아니던가. 박정희-전두환의 오랜 철권통치를 마감시킨 87년 6월 항쟁으로 획득한 직선제 개헌에 결선투표제를 결합시키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가슴을 칠 일이다. 결선투표제는 사표 걱정이 없는 1차 투표를 통해 국민의 뜻이 정확히 드러난다는 이점뿐만 아니라 벌써 냄새를 풍기는 기회주의자를 미연에 솎아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한 번 투표로 결정하는 현 제도 아래 국민 30% 안팎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듯이, 소선거구제 아래서는 -금년 4월 총선은 예외에 속하지만- 국민 40% 정도의 지지로 국회 의석의 60% 가까이 차지할 수 있었다. 이미 지배세력의 의식화 작업에 의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 적지 않은데 그런 의식조차 제대로 대의되지 않는 것이다. 소선거구제가 민의(국민의 뜻)를 대변해야 하는 국회의 구성 자체에서 민의를 왜곡한다는 점, 민주주의가 성숙된 나라는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 그중에서도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민의를 가장 정확하게 대변한다는 점 등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그럼에도 비례대표 의석은 거꾸로 줄어들었다. 민의보다 기득권을 대변하는 만큼, 지금의 국회 또한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수준 아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누구 말대로, 옛것은 사라졌는데 아직 새것은 오지 않은 혼돈의 시간, 대권 지망생들이 각자 계산에 따라 개헌을 놓고 갑론을박하는데 결선투표제와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입으로는 민의를 대변하겠다고 말하지만 민의를 올곧게 대변하는 제도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반사이익으로 강력해진 국회에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획득물로 두 제도의 입법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거듭 강조하지만, 국민보다 높은 수준도 아닌, 그저 “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와 국회의 구성을 위한 제도인데!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4833.html#csidxfcc43d012e5babe88263edd207cec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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