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글로벌 정보’ 사업제안서 허위 [경향신문 2015.2.10.]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ㆍ용역 비수행자도 명단에… 보안 각서에는 가짜 서명
ㆍ산업기술시험원 평가 무사통과 ‘9억 예산 날림 검증’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이 발주해 구글번역기를 돌린 수준의 ‘날림 콘텐츠’로 채워지고 있다고 지적(경향신문 12월25일자 10면 보도)된 ‘글로벌 기술정보사업’이 용역 제안서부터 허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제안서에 적시된 용역 참여자 중에는 아예 관여한 적이 없거나 보안각서 서명이 가짜인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KTL 기술평가위원들은 이 제안서의 ‘투입인력 전문성’ 항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줘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용역을 발주하면서 엉터리 검증·평가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경향신문이 9일 KTL 용역업체인 ㄱ미디어의 ‘중소기업을 위한 글로벌기술정보사업’ 제안서와 이를 토대로 한 KTL의 ‘용역기술평가표’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KTL은 지난해 7월 중소기업에 맞춤형 해외기술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온라인 경제전문지인 ㄱ미디어와 8억9000만원에 6개월짜리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제안서를 제출받았다.

ㄱ미디어는 유사 용역을 수행한 실적이 전혀 없고, 16명의 용역참여자 전원이 계약 체결 3~4개월 전에 급조한 인력이었다. ㄱ미디어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업무 컨설팅과 시스템 개발을 책임진 국가정보전략연구소 민모 소장(46)은 “경제정보분석 능력과 외국어 능력을 중점에 두고 인원을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글로벌 기술정보사업’의 용역기술평가표. 지난해 ㄱ미디어가 제안서에 적시한 용역 참여자 16명 중 허위 기재자나 가짜 서명자가 속속 확인됐으나 KTL 간부 5명이 참여한 ‘투입인력 전문성’ 평가에서 3명은 만점인 20점을, 2명은 19점을 줬다.

하지만 민씨의 설명과 달리 제안서에 기재된 용역 참여인력의 인적사항 중 상당수가 허위로 드러났다. 제안서에 유일한 박사학위 소지자로 적시된 박모씨(39·여)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구인광고를 보고 4번 정도 면접을 봤을 뿐 용역을 수행한 적이 없는데 제안서에 왜 내 이름과 사인이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ㄱ미디어에 지난해 4월 채용돼 용역에 참여했던 김모씨(35)와 최모씨(34)도 “제안서에 첨부된 보안각서 서명이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라며 “지난해 9월 우리가 퇴사한 후 제안서가 위조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스템 개발 총책임자로 기록된 김모씨의 경력란에 ‘서초구 보안등관리’, ‘초등생 독서관리’가 적혀 있는 등 용역참여자 대다수의 경력이 공공기관 정보시스템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10개 항목에 걸쳐 진행된 KTL의 기술용역평가에서 이 제안서는 100점 만점에 91.5점으로 ‘적격’ 판정을 받았다. 특히 투입인력의 전문성 항목은 인적사항 허위 기재에도 불구하고 5명의 평가위원 중 3명이 20점 만점을 줬고 2명은 19점을 줬다.

KTL이 지난해 3월 조달청에 제출한 과업지시서에는 ‘제안서의 모든 기재사항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관계서류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돼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도 평가·검증 작업이 이뤄지지도 않은 셈이다.

당시 평가위원이었던 중소기업인증센터장 최모씨는 “용역업체가 제안서를 마음먹고 허위로 써낼 경우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고 해명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202&artid=2015021006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