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월례회, 안수명씨 사연 소개
아버지 일하던 쿠바 농장서 태어나
지난 25일 챔블리에서 열린 흥사단 미동남부지부(회장 김정희) 월례회에서는 색다른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분명 우리가 아는 애국가인데 곡조는 달랐다.
91세의 한 노인이 우리가 아는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아닌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넣어 부르고 있었다. 구한 말부터 광복을 맞을 때까지 우리 선조들에 의해 가장 많이 불리던 애국가 곡조가 바로 이것이다. 특히 해외동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다.
이날 노래를 부른 주인공은 애니깽의 후손인 안수명 씨다.
애니깽(Henequen)은 쿠바의 한국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선인장과에 드는 열대성 식물 이름인 애니깽은 고기잡이를 할 때 쓰는 밧줄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다.
1905년 망국의 한을 뒤로 하고 멕시코 이민길에 오른 1,033명의 한국인들은 멕시코 애니깽 농장에서 고생을 하다가 1921년 3월 쿠바로 274명이 재이주한다. 20세기 초,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멕시코와 쿠바로 떠난 우리 선조들은 가시투성이 애니깽을 자르다 찔려 피를 흘리며 노예나 다름없는 저임금 노동자로서의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이런 쿠바 이민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안수명 씨의 아버지 안순필 씨며, 안씨는 1924년 쿠바의 마탄사스 애니깽 농장에서 태어났다.
안순필 씨를 비롯한 한인 쿠바 이민자들은 대한인 국민회 쿠바지방회를 결성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한인 국민회 북미총회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1937년부터 1944년까지 1,289달러의 성금을 모아 국민회 중앙총회로 보냈다. 또 246달러를 따로 모아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주석에게 보내기도 했다. 쿠바 아바나에 있는 중국계 은행을 통해서였다.
대한제국 군관이었던 아버지 안순필은 대한인 국민회 쿠바지방회 핵심 인물이었고, 안수명 씨의 형인 안국명 안재명, 누이인 안홍희 등도 1940년대까지 이 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안수명씨 또한 20대부터 이 단체에서 활동했다.쿠바 공산화 혁명 후 1961년 쿠바를 탈출해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정착한 안 씨는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은퇴했고 아들인 로렌조 안 역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말이 서툰 안 씨는 박선근 흥사단 표창위원회 위원장의 요청에 자신에게 익숙한 애국가 1절을 즉석에서 완창했다. 흥사단은 이날 안씨에게 공로패와 감사패를 증정했다.
안씨는 “이 자리를 마련해 줘 감사하며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번영하고 통일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인사했다.안씨의 소망은 기회가 되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인천 월미도에 있는 이민사 박물관에 자신의 부모 사진과 역사자료가 전시돼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안씨의 사연은 마이애미 거주 흥사단 단원인 조윤수 씨가 오랜 추적 끝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조셉 박 기자
▲애니깽 안순필 씨의 후손인 안수명 씨(오른쪽)와 가족들이 애국가 제창 시 경청하고 있다.
▲25일 흥사단 월례회의에서 안수명 씨(가운데)가 박선근 위원장(왼쪽)의 요청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오른쪽은 김정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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